이코노미조선
II-2. 페이크 마케팅 어떻게 응용될까

축구 포기하고 갔는데 맥주까지 덤으로?


기사입력 2014.01.28 15:03

 

레알마드리드와 AC밀란의 결승전이 있는 날. 축구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이 경기를 놓칠 수는 없다. 하지만 1136명의 AC밀란 축구팬들은 제각각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을 받고 한 행사장에 모여들었다. 고전음악과 시낭송이 열리는 콘서트장이었다. 중요한 결승전을 볼 수 없게 된 이들. 그런데 경기 시작과 함께 대형 스크린에서는 음악과 시가 아닌 축구 경기 화면이 펼쳐진다. 몰래 카메라와 같은 속임수였던 것.

경기 시작과 동시에 이 행사가 가짜였음을 밝힌 주최 측은 이들에게 맥주와 함께 대형 스크린으로 신나게 경기를 즐기게 했다. 주최 측은 다름 아닌 UEFA 챔피언스 리그의 후원을 맡고 있는 하이네켄 맥주 회사였다.

이 얼마나 짜릿한 반전인가. 속임수에 걸려든 1000여명의 희생자(?) 외에도 660만명이 스포츠채널을 통해 이 행사를 생중계로 시청했고, 1000만명은 뉴스 사이트를 통해 이 소식을 접했다. 또 500만명 이상은 SNS를 통해 이 사건에 대해 언급하며 재빠르게 소식을 퍼 날랐다.

 
※ 제공 : 홍대 트릭아이미술관 
- 산업 디자인, 건축물 등에 응용되고 있는 눈속임 그림, 즉 ‘트롱프뢰유(trompe-l’œil)’ 역시 페이크 기법의 사례다. 사진은 트롱프뢰유 작품.

브랜드·제품 감추고도 흥행…광고업계 활발히 응용
하이네켄이 치밀하게 준비한 페이크 콘서트 형식을 본뜬 마케팅 사례다. 거짓말로 축구를 볼 수 없게 만든 다음, 반전 효과로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한 것. 물론 맥주맛은 그보다 몇 배 더 시원하고 짜릿했을 것이 당연하다. 축구에 열광하는 이탈리아의 문화를 결합한 영리함도 돋보인 이 페이크 마케팅은 2010 칸 국제광고제 프로모션부문에서 GOLD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아프리카 밀림에 사는 스마모트족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부족은 대대로 눈에서 빛을 내는 부엉이를 키운다. 야간 사냥 때 손전등 대용으로 쓰기 위해서다. 그런데 부족의 야간 사냥을 동행 취재한 촬영진은 신비한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부엉이가 스스로 주변 상황에 따라 빛의 밝기를 정밀하게 조절하는 것. 촬영진은 부엉이의 능력을 과학적으로 검증해 보려 했지만 스마모트족이 허락하지 않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며, 이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동영상을 본 이라면 솔깃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진짜 같은 이야기지만 실은 스마모트족도, 눈에서 빛을 내는 부엉이도 모두 가짜.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만든 광고다. 이는 2009년 LG전자에서 ‘풀HD 모니터’의 스스로 밝기를 조절하는 기능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한 동영상이었다.

미스터피자에서도 2011년 ‘피자의 원조는 한국이다’라는 페이크 광고를 내놓은 바 있다. 다큐 형식으로 제작한 이 광고는 피자의 원조가 이탈리아가 아닌 한국이라는 ‘가짜 사실’을 진짜처럼 내세웠다. LG유플러스가 최근 시리즈로 만들고 있는 ‘페이크 미디어’ 형식을 이용한 광고는 광고인지 뉴스인지 헷갈리게 하면서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

광고업계에서는 페이크 마케팅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제품과 브랜드를 내세우는 대신 아예 숨겨버리기도 한다. 페이크 기법을 이용한 공익 광고로 유명한 이제석 광고연구소 대표는 “광고의 가장 진화한 형태는 광고가 아니어야 한다. 즉 광고인지 알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감쪽같이 진짜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매력적이고 그럴 듯한 스토리 라인이 담겨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세계적인 마케팅 전문가 조나단 가베이는 “어떤 브랜드가 소비자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선택을 받도록 하기 위해선 소비자들의 경험과 관련 있는 스토리 라인이 있어야 설득력을 갖출 수 있다. 그래야 사람들은 그 브랜드가 표방하는 이상(ideal)에 공감한다”고 설명한다.


- 2009년 LG 전자는 ‘풀HD 모니터’의 스스로 밝기를 조절하는 기능을 홍보하기 위해 페이크 다큐 형식을 빌려 만든 광고로 화제를 모았다.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 작품성도 인정
페이크 기법은 광고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돼 왔다.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The Blair Witch Project)’(1999)는 페이크 영화의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메릴랜드주의 블랙 힐이라는 숲 속. 세 명의 영화학도는 200여년 전 발생한 어린아이 살인 사건이 초자연적인 무언가와 관련이 있다는 전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들이 실종된다. 영화사는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가 이들이 실종된 지 1년 만에 그들이 촬영했던 필름이 발견돼 복원한 영화라고 미리 인터넷을 통해 홍보했다. 영화는 세 명의 배우가 다큐멘터리 작업을 위해 사용한 카메라 두 대를 가지고 촬영한 장면들이 전부였다. 불과 3만달러의 제작비가 들어간 이 영화는 무려 2억4000만달러를 벌어들이는 큰 흥행을 기록하고 1999년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호평을 받았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미술 작품, 산업 디자인, 건축물 등에 응용되고 있는 눈속임 그림, 즉 ‘트롱프뢰유(trompe-l’œil)’ 역시 페이크 기법의 사례다. 트롱프뢰유는 프랑스어 ‘trompe(속이다)’와 ‘loeil(눈)’의 합성어로 눈속임을 뜻하며 영어식 표현으로는 ‘trick of the eye’ 혹은 ‘trickeye’라고 한다.

미술사에서 트롱프뢰유의 역사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널리 알려진 최초의 예는 1504년 바르바리의 ‘자고새가 있는 정물’로 볼 수 있다. 1641년에 지어진 로마의 명물인 콰트로 폰타네성당 역시 트롱프뢰유가 접목된 건축물로 이 터널의 앞에서 뒤로 이동할수록 자신의 몸이 커지는 듯한 착각을 경험할 수 있다. 착각 혹은 착시 효과를 통한 재미를 주는 트롱프뢰유는 최근엔 산업 디자인 분야 등에서 널리 응용되고 있다. 홍대에 있는 트릭아이미술관에는 트롱프뢰유 작품들만을 모아 전시하고 있기도 하다.

“속이는 것에도 철학 필요”
하지만 페이크 기법을 이용한 마케팅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과장과 조작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일부 페이크 다큐 프로그램은 선정성 논란과 조작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유현석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페이크 마케팅에서 내세우는 가짜는 유쾌한 가짜라야 인정된다. 속이는 것에도 철학이 필요하다”며 “사기꾼의 거짓말과 만우절에 한번 웃자고 하는 거짓말은 분명 다른 차원의 거짓말이다. 보고 나서 머리를 치게 만드는 반전이 있는 속임수여야 대중의 심리를 유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영화뿐 아니라 모든 상업물의 속성 자체가 관객들을 얼마나 그럴 듯하게 속이느냐에 달려 있다. 어찌 보면 모두 사기인 셈이다. 하지만 대중을 얼마나 즐겁게 속이느냐에 바로 핵심이 담겨 있다. 유쾌하게 속고 즐기는 것 역시 우리의 권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1.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1999)는 저예산으로 제작되었으나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큰 흥행을 거두고 선댄스 영화제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2. ‘트롱프뢰유(trompe-l’œil)’ 기법을 이용한 나이키 광고



 Tip

페이크 마케팅, 웃지 못할 해프닝도…

영화 역사의 초창기인 1895년. 프랑스 파리 그랑카페 지하에선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이 상영되고 있었다. 객석을 향해 달려오는 기차를 보고 놀란 관객들이 한꺼번에 극장 밖으로 도망쳤다. 요즘 관객들은 입체 영상인 3D 영화를 보면서도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지만, 영화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 스크린 속 영상은 관객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형식은 다르지만 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페이크 다큐로 인해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 적이 있다. 1938년 미국 CBS의 라디오 드라마 ‘세계의 전쟁(War of the World)’이 방송될 때의 일. 당시 드라마의 연출을 맡았던 오손 웰즈는 청취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 뉴스 기법을 활용했다. 드라마 속 화성 침공 장면을 정규 라디오 방송을 중단한 채 뉴스 특보의 형태로 구성한 것. 뉴스에서는 현재 침공이 이뤄지고 있는 실제 지명을 언급했고, 내무장관 등의 이름을 빌려 이 사건이 실제 사건임을 강조했다.

극의 앞뒤에 허구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청취자들은 정규 라디오 방송이 중단되고 뉴스 특보가 방송된 것으로 알았고, 실제 수십만명이 피란길에 올랐다. 방송내용을 사실로 인식해 사회적인 대혼란이 야기된 것이었다. 

1984년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This is Spinal Tap)’에 등장했던 영국밴드 ‘스파이널 탭’은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그들의 실존을 너무나 확고하게 믿었던 탓에 아예 실제 밴드로 데뷔해 활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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